도촌 이수형 할아버지나 동은 이득성 할아버지를 굳이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음지에서 고생한 또다른 할아버지를 우리는 모르고 있었기에 언급하려는 것이다. 부사정파 13세 이지방 할아버지이다. 도촌 이수형 할아버지의 5촌 조카님 되시는 자화 이지방 할아버지는 지덕천군사 이인숙의 손자요 소위장군 행충좌위 부사정으로 최종관직 호군에 이른 이경연 할아버지의 손자이며 충찬위로 복무하다가 선무랑 목청전직에 이른 이징 할아버지의 아들이다. 자화 이지방 할아버지는 1480년 성종 9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평안도와 경상좌도 등에서 절도사로 근무하며 조선의 변방을 지켰다. 대동보나 역대 우계이가 세보에 의하면 자화 이지방 할아버지의 최종관직은 가선대부 동지돈령부사라 하는데, 왕조실록에 의하면 자헌대부 지중추부사로 승진했으나 양사의 거듭된 탄핵으로 면직되었다 한다.
그것을 기억한다면 지금부터라도 향후 세보, 대동보 편찬시에 지방 할아버지의 최종관직은 가선대부 동지돈령부사가 아니라 자헌대부 지중추부사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세조의 단종폐위에 분개하여 관직을 버리고 세상을 등진 도촌 수형 할아버지와 동은 득성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있었다. 그들의 충절은 높이 사야 되겠으나 그대신 그 가족 친척들은 생계가 끊기고 어떻게 되었을까. 세조 수양의 잔혹함은 두번째로 놓더라도 누군가는 가족의 생계를 생각하여 앞서는 이도 있어야 했다. 이지방 할아버지는 다시 집안을 일으키신 분이다. 그의 후손 중에는 충장공 복남같은 충신도 나오고 송곡 이서우와 같은 저명 문인도 나왔다. 자화 이지방 할아버지는 집안을 다시 일으킨 인물임에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어 통탄스럽기 그지없다.